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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황제의 상납을 받던 부여

           

           

           

          2010년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부여는 이미 1세기 초에 왕호를 사용하였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등 발전된 국가모습을 보였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만으로도 발전한 국가 모습이라고 가르치는 이러한 역사교육은 부여의 역사를 말살, 왜곡하고, 극도로 폄하한 엉터리 역사 교육이다.

          왜냐하면 부여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약소국ㆍ미개한 나라가 아니라, 중국 황제가 지극정성으로 대접해왔던 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보는 ‘옥갑(금루옥의)’은 중국 한나라 황제를 매장할 때, 시신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완전히 감싼 수의와 베개이다. 옥갑(옥의)을 입으면 시신이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옥갑을 수의로 사용한 것이다.

          옥갑을 만드는 방법은 질 좋은 옥을 구하여 네모, 세모 등의 얇은 옥편 조각으로 가공한다. 옥편의 귀퉁이에 작은 구멍을 뚫어서 철사 모양의 금실로 꿰어 묶는다. 이렇게 만드는 옥갑에 들어가는 옥편이 2,498매 내외 이고, 금실이 약 1,100g이나 되며, 옥갑의 총 길이는 약 1.88m 내외나 된다. 때문에 옥갑을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때문에 전한(서기전206~서기8)때는 황제 황후와 황제의 아들들인 제후왕까지 이러한 옥갑을 사용했지만, 후한(25~220)때는 옥갑의 제작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황제와 황후만 이 옥갑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여 왕들도 이 옥갑을 수의로 사용하였다. 부여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 황제로부터 선물 받아서 사용한 것이다. 옥갑의 용도가 시신을 영구히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으므로, 한나라는 부여왕의 서거에 맞추어 신속하게 옥갑을 선물하여야 했다.

          문제는 옥갑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돈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 서거할 지도 모르는 부여 왕의 장례에 맞추어 보내려면 옥갑을 미리 만들어 부여에 가까운 곳에 보관하여 둘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한나라 황제는 부여왕의 수의로 보내줄 옥갑을 미리 만들어두도록 조정에 명령하였고, 한나라 조정에서는 옥갑을 미리 만들어 부여에서 가장 가까운 현도군 보물 창고에 보관하여 두었다. 부여 왕이 서거했다는 통보를 받자마자 즉각 옥갑을 보내주기 위한 것이었다. 사마의가 공손연(?~238)을 패망시키고 연(燕)나라 현도군 창고를 열어 보니 부여 왕의 장례에 수의로 보내려고 준비해둔 옥갑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사건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을 직접 보고, 들은 후한시대 사관들의 기록 중에서 중요한 내용만을 추려서 편찬한 『후한서』, 삼국시대 사관들의 기록 중에서 중요한 내용만을 추려서 편찬한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다.

          서거한 부여왕에 대해서조차 한나라 황제가 이토록 정성을 바쳐야 할 정도였다면, 평상시의 부여에 대해서는 더욱 지극정성으로 대접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후한서』「동이열전」의

           

          서기 111년 부여왕이 보병과 기병 7~8천명을 이끌고 낙랑군을 침공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살상하고 약탈하였다.… 서기 120년, 왕위를 계승한 위구태(尉仇台)가 (한나라에) 조공하였다. (한나라) 안제는 위구태에게 인수, 금, 비단 등을 하사 하였다. 서기 167년 부여와 부태(夫台)가 군사 2만을 거느리고 현도군을 침입하여 약탈하였다.

           

          라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위 『후한서』「동이열전」의 “부여왕이 7~8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낙랑군을 공격하고, 167년 2만의 군사로 현도군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은 위만조선이 한나라에 빼앗긴 옛 땅을 되찾기 위한 전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서기 111년에 한나라의 낙랑군을 침공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살상한 부여가, 10년도 지나지 않은 서기 120년에 한나라에 조공하였을 리 없다. 조공을 보낸 부여에게 금과 비단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은, 한나라를 침략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의 선물 내지 상납이다. 부여, 흉노, 선비 등의 북방 종족들은 중국 측에서 보내는 재물의 질이나 양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군사를 몰아 중국을 침공하곤 하였다. 때문에 서기 176년 부여가 2만 군사로 한나라 현도군을 침입하여 약탈했다는 기록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담은 것이다.

          중국은 이웃나라 사신이 중국에 가지고 오는 선물은 “찾아뵙고 바친다.”라는 뜻의 ‘조공(朝貢)’이라고 기록하고, 중국에서 선물로 준 것은 ‘하사하다’라는 뜻의 ‘사(賜)’라고 기록한다. ‘조공’이라는 기록은 중국은 높이고 다른 나라는 낮추는 중국 측의 과장된 역사 기술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중국은 조공이라고 과장하여 기록한 사서 내용을 고구려 발해 등이 중국의 지방정부였다는 한 근거로 삼는다. 과장과 왜곡은 끝이 없다.

          중국 후한(25~220) 당대의 기록인 『후한서』와 삼국시대 당대의 기록인 『삼국지』에 실려 있는 역사 기록에 담겨진 진실은, ①중국 북동쪽에 있는 부여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였다. ②중국은 부여에 중국을 공격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으로 많은 금, 비단 등의 재물을 보냈다. ③중국에서 보내는 재물이 성에차지 않으면 부여는 중국을 정벌하곤 하였다. ④중국은 부여의 침공을 피하고자 부여를 높이 대접하였다. ⑤그 중의 하나가 언제 서거할지도 모르는 부여 왕의 장례에 수의로 선물하기 위하여, 중국 황제만 입을 수 있는 옥갑을 항상 미리 만들어 부여와 가장 가까운 현도군 보물창고에 보관하여 두었다가 부여왕의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수의로 사용하도록 보내는 것이었다.

          중국이 이토록 부여의 무력을 두려워하였고, 부여를 높이 지극적성으로 대접하였다는 중국의 역사기록들은, 부여의 후손인 한국인에게 역사문화적인 자긍심을 줄 수 있는 역사기록이다.

          그러나 한국의 초, 중, 고등, 대학교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자랑스러울 만한 역사문화를 모조리 말살ㆍ왜곡한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ㆍ추종하는 이들이 한국 고대사학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내용은 김종서 박사의 연구서인 『기자 위만조선 연구』『부여 고구려 백제사 연구』『한사군의 실제위치 연구』『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비정 연구』『한국사 교과서 바로잡기 1000장면』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것은 역사모(www.yeoksamo.com) 홈페이지나 도서관ㆍ서점 혹은 천손(www.cheonson.net) 홈페이지를 찾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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